<여호와는 나의 목자>
어떤 목사님이 이웃 교회에 시무하는 후배 전도사님으로부터 자기 교회의 주일 밤 예배에 설교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기로 약속을 하고 날짜가 거의 되어갈 무렵이었다. 이웃 교회의 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보에 싣기 위해 설교제목과 성경본문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말했다. " 본문은 시편 23편 1절부터 6절까지" 그러자 전도사님은 "그러면 제목은요?" 하고 물었다. 목사님은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고 대답하였다. 전도사님이 이를 받아 적으면서 "그 다음에는요?" 하고 물었다. 아마 그 뒤에 뭐가 더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라고 대답해 주었다.
약속한 주일 밤 저녁 예배에 그 이웃 교회를 찾아갔다. 안내를 받아 강단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아 주보를 펼쳐 보았다. 목사님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밤 예배 설교제목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기가 콱 막혔다.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란 제목에 핀잔처럼 전도사에게 한 말이 제목으로 가 붙었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찬송을 하면서도,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면서도 제목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설교를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되었다.
고민 끝에 목사님은 "그래, 제목대로 설교를 하자!"하고 결심을 했다. 준비한 설교의 원고를 덮고 전혀 새로운 각도로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다. 제목을 바꾸니 성경이 새롭게 보였다. "여러분은 푸른 풀밭의 싱싱한 풀을 원하십니까, 맑은 시냇가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으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시편 23편에 나오는 양은 그 풍성한 풀밭에서 풀을 뜯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누워 있습니다. 너무 배가 불러서 이겠습니까, 아니면 욕심이 없어서 이겠습니까? 양은 배가 불러도 몇 시간씩 계속 풀을 뜯고 우물거리며 되새김질을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도 분명합니다. 목자에게서 오는 참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나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내가 그 분의 양이 되니 참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하고 외쳤다. 온 교회 성도들이 "아멘, 아멘"하며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 기도에 수없이 많은 요구 사항만 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달라는 말도, 푸른 풀밭에 눕게 해 달라 울면서 조를 필요가 없다. 그것은 목자가 할 몫이기 때문이다. 만족 해 하고, 감사해 하고, 그래서 찬양이 절로 나오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 달라는 것 일변도의 신앙이다. 신앙생활이 오래 되었든, 교회직분이 어떤 직분이든, 상관없이 달라는 요구가 많다. 물론 이런 신앙이 잘못이고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신앙생활을 진심으로 하려고 한다면, 무엇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함을 알고, 여호와가 내 목자가 되도록 하는, 나의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 한다. 여호와가 내 목자가 되면, 사실 무엇을 달라고 하는 기도에 전념 안 해도 될 것이다. 왜 인가?내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한 것을 아시고 채워 주시기 때문이요, 마치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 주시고 인도 하시고 보살펴 주실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확신과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항상 못 미더워 하고 불안해 하는 것이 아닌가? 진정 여호와가 내 목자가 되시면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이며, 무엇을 걱정을 할 것인가?오늘 우리에게 이런 믿음과 확신이 과연 있는가? 묻고 싶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면 됐지, 더 뭐가 필요한가? 아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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