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고백은 말보다 몸으로 |
토기장이- 한소망감리교회 고병국 목사 |
도대체 저 친구는 뭐가 좋아서 교회에 저렇게 열심히 다닐까?’
하나님을 몰랐던 고병국 목사의 어린 시절에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고 목사 고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 에는 지방에는 교회가 많이 없었고 개신교가 널리 알려
지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고 목사의 가정은 불교 가정이라서 교회 문턱을 구경 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
시 그가 살던 단양 지역에 곳곳의 부흥회로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는 것 역시 깨
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찾아간 부흥회. 그곳을 시발점으로 고 목사의 마음밭에도 부흥의
씨앗이 뿌려졌다. 처음 찾아간 낯선 교회에서 기도와 찬양하는 모습이 낯설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 ‘낯설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옛날 모습으로 계속 살아 왔다면 지금쯤 허랑방탕한 모습이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
님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된 다음부터는 그의 삶 모든 것이 바뀌게 됐다. 새벽예배를 시작해 제자
훈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교갈 때와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항상 먼저 교회를 찾는 사
람이 된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던 그가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얼
마나 강하게 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 있게 한다.
“학생신분으로 많은 물질도 드릴 수 없고 그저 몸으로 하는 일이면 뭐든지 다 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헌신과 섬김을 몸소 실천하
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독교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의 가정은 언제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목회자
로 소명을 받고 당당하게 신학대학교에 합격했지만 가정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1년
동안의 기간은 더 좋은 목회자로 준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결국 이듬해 신학
교에 들어가게 되고 본격적으로 그의 사역은 시작 됐다.
“목회자로 활동하면서 10여 년 전부터 영성목회에 관심을 두고 사역을 준비해 왔습니다”
대학시절 수도자로 유명한 마카리우스 영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다운 영성을 찾는 것에
갈급해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도 변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
다”
그는 ‘사막 교부들의 금원집’이라는 책을 통해 영성 목회의 근간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
가 강조하는 성경 말씀의 실천은 지금껏 목회를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명예와 물질의 욕심에서 초월하게 만들고 목회자로서 성결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
게 만드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영성 목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드는 효과와 더불어 분에 넘치는
사치로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몇 몇의 목회자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있었다.
한때는 감리사로 활동하며 목회자로서 품위 유지를 위해 좋은 차로 바꾸라는 성도들의 권
유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 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와 함께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말씀의 실천이
아닐까? 어떤 이들은 기독교에서 말씀 실천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을 하는 사람과 서로 자신이 서로 닮아 가듯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고 목사는 진정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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