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는 것>
책을 읽다가 미국의 ‘세븐 일레븐’ 이라는 체인 스토어 이야기 하나가 감동을 주었다. 매우 추운 어느 겨울 날, 세븐 일레븐 본사에서 파견된 서비스 감독관이 가게를 돌아보고 있었다. 감독관은 '오늘 같은 날은 손님이 별로 없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손님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산마루에 있는 세븐 일레븐 가게에는 의외로 손님이 많았다. 한참 동안 그 가게를 관찰하던 감독관은 계산대에서 돈을 받는 여직원이 매우 친절하고 상냥하게 손님을 맞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 서비스가 중요하지'라는 생각을 하는데, 노인 한 분이 그 가게로 들어 왔다.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그 노인은 가게 안을 빙빙 돌더니 바나나 한 개를 집어 들었다. 그런 다음, 사람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계산대에 바나나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 여직원은 노인의 이름을 부르며,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일을 물은 뒤, 바나나 한 개를 정성껏 포장해 주었다. 그런 다음 밖에까지 나와 노인을 끌어안으며, 힘내라고 말한 뒤 "내일 또 오세요" 라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서비스 감독관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맞아, 저 노인은 바나나를 사러 온 게 아니야.저 노인은 사랑을 사러 왔어".
그 후, 세븐 일레븐의 매니저 교육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아주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단순히 물건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물건을 파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쩌면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에 굶주리고 있는 자인지 모른다.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말처럼, 수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고독을 느끼며 살고, 분주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왠지 모르는 외로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사람 모습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너도나도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 조금만 친절하고 상냥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유쾌하지만, 조금만 불친절하고 딱딱하면 불쾌하게 생각 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이 여유가 점점 사라진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쉽게 상처를 받고 깊은 상흔을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교회에 나오는 우리들도 사실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나온다. 예수님에게서 목사에게서 성도들로부터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돌아 갈 때는 사랑을 받기는 고사하고 상처만 듬뿍 가지고 간다면 이를 두고 누가 쉼터요 안식처라고 하겠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다. 교회는 사회의 등대요 인간의 쉼터요 일상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갖가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지고 가는 인간들이 십자가 밑에서 십자가를 보고,말씀을 듣고, 나눔을 통해서 쉼을 얻고 안식을 얻고 씻김을 받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어떤 자가 되어야 하는가? 사랑을 그리워 하며 사랑 받기를 원하여 바나나 한 개를 사러 오는 남루한 모습의 한 노인을 볼 수 있는 여점원이 되어야 한다. 그런 여점원이 많을 때 그 교회를 사랑이 많은 교회라고 한다. 흔히 듣는 말 중에 하나는 교회가 더 사랑이 메마르다고 한다. 즉, 사랑이 그리워서 찾아간 교회에서 냉대와 홀대만 있을 뿐 사랑이라곤 그림자도 찾아 보기 어렵다고 한다.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사랑을 파는 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처럼 교회도 그렇다. 사랑을 파는 교회, 사랑을 나누어 주는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고 또 오고 싶은 교회가 아닐까?
자, 이제 주위에 고달파 지치고 무거운 짐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주는 예수의 화신자가 되어 보자. 내 생활 터전에서 말이다. 내 삶의 자리에서 말이다.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전도라고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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